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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막 오른 도쿄올림픽…아베는 없었다 - KBS뉴스

23일 저녁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화려한 불꽃이 터지면서 2020 도쿄올림픽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연합뉴스23일 저녁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화려한 불꽃이 터지면서 2020 도쿄올림픽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연합뉴스

2020 도쿄올림픽의 막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 올랐습니다. '감동으로 하나 되다'라는 주제로 시작된 개회식은 전 세계인에게 코로나19 사태 아래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개회식이 열린 곳은 도쿄 신주쿠에 있는 국립경기장. 1조 7천억 원을 들여 새로 지은 6만 8천석 규모의 대형 경기장입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와 긴급사태 발령 아래 개회식을 이 곳에서 직접 지켜본 사람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장과 나루히토 일왕 등 귀빈과 대회 관계자 등 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있어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안 보입니다. 바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전날 그가 올림픽 관계자에게 밝힌 불참 이유는 단순합니다. 도쿄에 코로나19 긴급사태가 발령돼 있고 대부분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점 등을 고려해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베라는 인물은 도쿄올림픽과 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 그의 개회식 불참은 매우 이례적이고 심지어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2013년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2020 도쿄올림픽 유치를 호소했던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 KBS뉴스 화면2013년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2020 도쿄올림픽 유치를 호소했던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 KBS뉴스 화면

■ 그가 그토록 원했던 올림픽

2013년 9월 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제125차 IOC 총회.

2020년 제32회 하계올림픽 개최 도시 선정을 놓고 마드리드(스페인), 이스탄불(터키), 그리고 도쿄가 붙었습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들고 있던 카드를 뒤집으며 "도쿄!"를 외쳤습니다. 재수 끝에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 도시로 도쿄가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올림픽 유치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아베였습니다. 올림픽 업무는 보통 문부과학성이 맡는 것이 관례임에도, 총리로 취임하자마자 직접 올림픽 유치 외교에 나섰습니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을 방문할 때마다 IOC 위원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또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아베는 영어로 연설하는 성의(?)마저 보였습니다. 당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유출 악재로 일본의 올림픽 유치에 의문이 제기되던 때였습니다.

아베는 어눌한 발음이지만 짐짓 여유를 부려가며 "오염수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점이 왜 먹혔는지 지금도 이해는 잘 안 가지만 대회 유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면서 2020년 하계올림픽은 도쿄로 넘어오게 됐습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폐회식 당시 인기 게임 캐릭터 ‘수퍼 마리오’ 복장으로 깜짝 등장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2016년 리우 올림픽 폐회식 당시 인기 게임 캐릭터 ‘수퍼 마리오’ 복장으로 깜짝 등장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1년 연기'도 그의 결정

아베는 그 후 도쿄올림픽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각인됐습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폐막식 때 '슈퍼 마리오' 복장으로 깜짝 등장하면서까지 차기 개최지 도쿄를 다시 알렸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던 지난해 3월, 도쿄올림픽 1년 연기를 결정한 것도 다름 아닌 그였습니다.

모리 요시로 당시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이 제안한 '2년 연기'도 아니고, '취소'는 더더욱 아니었던 '1년 연기'. 아베는 '늦어도 2021년 여름까지', '인류가 코로나19를 이겨낸 증거'로 도쿄올림픽 패럴림픽을 '완전한 형태로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입버릇처럼 되뇌었습니다.

그의 올림픽 개최에 대한 집념 혹은 집착은 지난해 9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명예 최고 고문을 맡았고, 코로나19 감염 대유행과 반복되는 긴급사태 발령 아래에서도 올림픽은 당연히 개최돼야 한다는 생각을 꺾지 않았습니다.

올해 들어서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올림픽 개최 반대 여론은 한 때 80%대까지 치솟았습니다(지난 5월, 아사히 여론조사).

7월 초까지도 40% 안팎의 '개최 반대' 여론이 이어졌는데요. 그런 여론에 아베는 같은 일본인들조차도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반일(反日)적인 사람들이 도쿄올림픽 개최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개최를 한 달 앞둔 6월 23일 도쿄도청 앞에서 올림픽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일본 시민들. 도쿄 박원기 특파원 촬영도쿄올림픽 개최를 한 달 앞둔 6월 23일 도쿄도청 앞에서 올림픽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일본 시민들. 도쿄 박원기 특파원 촬영

■"반대하면 反日"이라더니…

코로나19 감염 우려와 올림픽 반대 여론을 의식해서일까요. 올림픽 개회식에 '귀빈'으로 초청받은 인사들의 불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지 않을까 걱정하는 도요타자동차, NTT, NEC 등 올림픽 주요 후원업체 대표들은 물론이고요. 일본경제인단체연합회, 일본상공회의소, 경제동우회 등 경제 주요 3단체 회장들도 개회식에 오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올림픽 강행 움직임에 여론이 안 좋아지자,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올 가을엔 총선까지 있다 보니 집권 자민당 의원 상당수도 개회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한 자민당 의원은 마이니치 신문에 "개회식장에 앉아 있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비판 받을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남들은 뭐래도 아베는 그러면 안 된다'는 분노는 더욱 들끓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올림픽 유치부터 1년 연기 결정까지 모든 주요사안을 결정한 당사자인데다, '올림픽 반대하면 반일'이라는 논리 전파자이기도 하니까요. 심지어 "국민에 대한 배신"이자, "언행불(不)일치"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더 나아가 그의 과거 언행까지 끄집어 냈습니다. 7월 23일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원전 방사능 문제는 관리되고 있다'고 했던 2013년 연설에 대해 "현실을 속인 연설"이라면서 "이 연설로 올림픽 유치를 완수한 후에도 운영의 근간을 흔드는 사태가 계속됐다"고 비판했습니다.

애초 생각했던 '돈 안 드는 올림픽' 구상이 깨졌고, 경비는 눈덩이처럼 늘었으며, 유치 과정에서의 매수 의혹, 책임자들의 잇단 교체가 잇따르면서 올림픽은 '이상한 대회'로 전락해 버렸다는 겁니다.

사설 말마따나 '분단과 불신 속에 막이 오른' 도쿄올림픽. 본인의 염원과도 같던 그 올림픽의 개회식도 직접 보기를 거부하고 이날 밤 그는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안방에서 TV로 조용히 중계를 봤을까요, 아니면 어디서 쓴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있었을까요.

코로나19 사태 속 과연 도쿄올림픽이 완주할 수 있을까 여부와 함께 궁금해지는 대목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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